대흥교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 2:22)

[2025.04.27-주일축제예배] 주님이 함께 계십니다(디모데후서 4-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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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흥교회
댓글 0건 조회 46회 작성일 25-04-30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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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7-주일축제예배] 주님이 함께 계십니다(디모데후서 4-9-18)


사사로운 부탁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12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14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15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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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주제

- 바울의 삶과 믿음의 태도

- 바울의 전도 사역과 그 결과

- 사람들과의 관계와 감정의 중요성



다음 할 일

- 마가와의 관계 회복 방안 모색

- 바울의 죽음을 슬퍼하는 가족, 지인들에게 위로와 기도 제공

- 바울의 전도 열매를 돌아보는 시간 갖기

- 바울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간 갖기



단락별 요약

예수님의 십자가

- 현재만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는 멀리 등지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임

- 미래에 나타날 일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현재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천국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될 것임


바울의 삶

- 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맞이할 미래의 일에 대하여 아주 분명하게 선언해 줌

- 바울은 이 땅에서 살았던 우리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평가받는 정리하는 심판의 과정이 있다라고 하는 것을 깨닫고 살았던 사람임

- 바울은 이 땅의 것에 미련 두지 않고 하늘의 시민권을 보고 살아감


바울의 고난의 길

- 바울은 천국에서 받을 영광의 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고난의 길을 기쁘게 갈 수 있었음

- 바울은 예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날이 다가왔다고 생각하고 있음


바울의 기도

-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자신이 전도했던 열매가 곳곳마다 보이더라는 것을 깨달음

- 바울은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기도할 때마다 이 기도를 부탁했을 것임

- 바울은 자신을 위해서 기도할 때마다 전도의 문이 활짝 열리도록 기도했을 것임


바울의 빌립보 감옥 경험

-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은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됨

-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실패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됨

- 복음을 위해 살았던 복음을 위해 땀 흘리고 복음 위해 눈물을 흘렸던 그 삶은 실패가 아니라 여전히 남아 있더라는 것임


바울의 복음 전파

-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사역 속에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음

- 죽음 앞에서 바울 곁에 남은 사람이 없음

- 사람은 믿을 대상이 아니라 사랑할 대상임


바울의 마가에 대한 사랑

- 바울은 마가를 데려오라는 바나바의 제안을 거절함

- 바울이 마가를 데려오지 않은 것은 지난 날의 서운함과 아픔 때문이었음

- 바울이 마가를 데려오라고 한 것은 심판대 앞에 설 때 부끄럽지 않도록 서기 위해서였음

- 바울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좋지 않았던 감정들을 다 스스로 풀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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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렇게 두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한 부류는 현재만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현재 지금이 중요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미래에 나타날 일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오늘 행복을 추구하고 오늘 기분, 오늘 감정에 자신의 인생을 맡기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사람들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즉 오늘 눈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는 멀리 등지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여러분 성경에는 바로 오늘만 바라보고 오늘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맞이할 그들의 미래의 모습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9절 말씀 시작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오 그들의 씨는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오늘만을 바라보며 오늘 당장의 행복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맞이할 그들의 미래는 멸망이라는 거죠.

부끄러움이라는 거죠.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겁니다.

또 한 부류는 미래에 나타날 일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그 미래를 위해서 현재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미래를 바라보면서 그 미래를 위해서 오늘 현재 준비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바울은 이 사람들에 대하여 하늘에 있는 시민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시민권, 저 천국에서 영원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 특권을 바라보면서 오늘을 살아간다는 거죠.

여러분 그들에게 나타날 미래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의 몸으로 변화를 받게 될 것이다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 그 예수님 때문에 우리의 추하고 나약한 우리의 몸이 영광의 몸으로 변화 더 입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래를 위해서 오늘 준비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누릴 미래의 모습이라고 하는 거죠.

이 땅에 사는 동안은 별로 차이가 안 납니다. 오늘을 위해 사는 사람이나 미래를 위해서 오늘 준비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은 땅에서는 별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 죽음 이후에 이 땅의 삶이 끝난 다음에 그 두 부류의 사람이 맞이할 미래의 모습은 전혀 다르겠죠.

오늘을 위해 살았던 지금의 행복을 위해 살았던 사람이 갈 곳은 한 곳밖에 없죠.

어디일까요? 지옥이죠. 영원히 영원히 꺼지지 않는 그 뜨거운 불길 속에 그곳에서 살아온 나를 후회하면서 부르짖으면서 그렇게 살 지옥불밖에 없는 거죠.

그러나 여러분 미래를 위하여 현재를 살았던 사람들, 그들은 이 땅에서 바라보고 기다렸던 것처럼 부활의 주님, 재림의 주님과 함께 저 영원한 천국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후자겠죠.


오늘을 위해 지금의 행복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미래를 위하여 오늘 현재를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신앙인의 삶의 모습일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오늘을 위해 사셨습니까? 지금의 행복을 위해 사셨습니까?

아니면 미래를 바라보며 죽음 이후에 천국을 바라보면서 그때를 위해 내가 지금 오늘을 절제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성경은요. 모든 사람들이 맞이할 미래의 일에 대하여 아주 분명하게 선언해 주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 말씀 시작.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오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중요한 말입니다.

우리가 절대로 절대로 잊지 않아야 할 말씀입니다.

사람에게 있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거예요. 피해 갈 수 없는 거예요.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죽어서 끝이 아니죠. 그다음에 뭐가 있다고요?

심판이 있다.


이 땅에서 살았던 우리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평가받는 정리하는 심판의 과정이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우리 모두의 미래의 일들을 분명히 깨닫고 살았던 사람들, 그들의 삶의 모습은 달랐습니다.

가치 있는 일에 그리고 의미 있는 일에 열매 맺는 삶을 살았던 거죠.

여러분 그중에 한 대표적인 사람이 바울일 겁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하면서 수많은 교회를 세웠고 수많은 사람을 예수님께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그런 사람인데 바울이 한 일을 보면 우리는 흉내낼 수 없는 어떻게 사람으로서 저런 인생을 살 수 있었을까?

그런데 바울이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죽음 이후를 그는 바라보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현재만을 위해 산 것 아니라 죽음 이후에 일어날 일들을 바울은 보고 살았던 거죠.

바울이 빌립보서 3장 1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


여러분 바울이 나를 본받으라고 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 구체적인 내용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무엇을 본받으라고 했을까?

빌립보서 3장 20절에 답이 나오죠. 시작.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다.

이걸 본받으라는 겁니다. 나는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사는 것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바라보면서 살아간다.

나처럼 너희도 이것을 본받으라. 바울이 본받으라고 하는 것은 바로 땅의 속이 아니라 하늘의 시민권을 보고 살아가라는 겁니다.

이런 바울의 신앙의 고백이 또 한 번 더 나타나지요.

고린도후서 5장 1절과 2절 말씀입니다. 시작.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더 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바울이 알았던 최고는 뭡니까? 우리의 장막집은 무너진다는 겁니다.

그 말은 우리는 반드시 죽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죽음이 바울 앞에는 허무가 아닌 것은 죽음이 두려움이 아닌 것은 내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는 순간 나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하늘의 영원한 집으로 들어간다는 거예요.

여러분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죽음이 멸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영원한 세상에서의 새로운 출발이라는 것을 바울은 확실하게 믿고 살았던 거지요.

그렇게 바울은 이 세상의 죽음조차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이 땅의 것에 미련 두지 않았습니다. 하늘의 시민권,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하나님이 준비한 영원한 집이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바울은 이 땅에서의 삶을 쉬운 길, 평안한 길, 그런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고난의 길, 좁은 길을 스스로 선택하면서 살았습니다.

골로새서 1장 24절 말씀입니다.


시작,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다른 사람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리고 이 땅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바울은 스스로를 괴롭혔습니다.

사서 고생의 길을 선택했고 그 길을 걸어갔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운다. 고생스러운 것만 선택해서 살았던 것이 바울의 삶이었습니다.

로마서 8장 18절 말씀 시작 생각하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교회를 위해 구원을 위해,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기 위해서 그 엄청난 고난을 당했지만 바울은 그 고난이 싫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뻤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금 내가 하는 이 고난이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받을 영광, 하나님 나라에서 누릴 상급과는 비교가 안 되기 때문에 나는 지금 고생의 길, 힘든 길, 남들이 하지 않은 그 길을 내가 스스로 간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은요 천국에서 받을 영광의 상을 바라보았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8절 말씀입니다. 시작,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바울이 바라본 것은 이 땅에서의 복음을 위한 헌신과 수고 이후에 언젠가는 죽겠지만 죽음이 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가면 하나님이 준비한 상급 의의 면류관이 있다는 것을 그는 바라보고 살았기에 고난도 기뻐하며 즐겁게 그 길을 갈 수 있었죠.

여러분 물론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며 그리고 복음을 위해 살았던 바울의 삶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흠모할 만한 것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바울처럼 살아라 그러면 기쁘게 할 사람도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고난의 연속이었고 외로운 길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렇게 복음을 위해 살았던 사도 바울이 자신의 죽음을 약 1년 앞에 두고 있을 때에 믿음의 제자였던 디모데에게 쓴 편지가 바로 디모데전서와 디모데후서입니다.

바울은 AD 68년 경에 로마 감옥에 두 번째 수감되었다가 순교를 했습니다.

바울은 68년에 죽은 거죠. 그런데 그 전 약 1년 전에 바울이 이 디모데후서를 기록한 겁니다.

디모데후서에 보면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이미 알고 있고 예견하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1절에 보면 하나님 앞과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바울은 이제 예수님의 심판대 앞에 자신이 설 날이 다가왔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디모데후서 4장 6절에 보면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오늘 이 본문의 말씀은 바울이 죽기 직전에 쓴 말씀인 거죠.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앞에 두고 두 가지 소중한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이제 자신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그때까지 자신에게 남아 있는 이 두 가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첫 번째는 복음을 위해 헌신하고 수고했던 그 열매가 남아 있더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 17절에 바울은 하나님 앞에 이렇게 감사합니다.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되었다.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되었다 이 말입니다.

바울이 오직 복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면서 살아왔는데, 이제 자신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돌아보니 자신이 전파했던, 자신이 선포했던 그 복음이 수많은 이방인들을 구원시켰더라는 겁니다.

그 자신이 전도했던 열매가 곳곳마다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니 바울이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바울의 일생은 오직 복음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7절 말씀 시작.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바울이 말하는 선한 싸움이 무엇일까요?

어떻게 싸운 것이 선한 싸움이었을까요? 여러분 그것은 복음을 위한 삶이었다는 거죠.

사도행전 20장 24절 말씀은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데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님들을 만납니다.

그들이 바울을 말립니다. 올라가면 죽습니다. 예루살렘에 가면 당신은 죽습니다.

체포됩니다. 그러니 여기 있으십시오. 우리가 당신을 지켜주겠다.

눈물로 만류할 때 바울이 그들에게 한 말이 바로 사도행전 20장 24절 말씀입니다.

다시 한 번 보여주시겠습니까?


시작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 바울이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다라고 할 때, 그 싸움의 내용이 바로 이거예요.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고 오직 복음을 전하는 복음을 위해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생각할 때 하나님 앞에서 선한 싸움이었다는 겁니다.

여러분 바울이 무엇을 놓고 기도했을까요? 바울은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기도할 때마다 아마 이 기도를 부탁했을 거예요.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이 기도를 부탁했던 내용입니다.

골로새서 4장 3절 말씀 시작.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이게 바울의 기도 제목이었어요.

그럼 뭘 기도해 달라고요?


내가 전도하러 가는데 하나님께서 전도의 문을 열어주셔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도하게 해달라.

복음을 전하게 해달라. 예수 전하게 해달라 이것이 바울의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기도하시지 그렇죠? 여러분의 기도와 바울의 기도가 동일하십니까?

달라도 너무너무 다르죠. 여러분의 기도가 바울의 기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는 오직 전도의 문을 열어달라고 만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해달라고 나를 위해서 기도하려면 내가 가는 이 길에 전도의 문이 활짝 열리도록 그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했던 것이 바울이었습니다.

복음에 미쳤고 오직 복음을 위해 살았던 삶이 사도 바울의 삶이었습니다.

여러분 그 길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습니까?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바울이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어떤 사람들의 고소를 당합니다.

백성들을 미혹한다는 그런 제목으로 빌립보 감옥에 들어갑니다.

바울은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무엇을 죄를 지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자신의 눈으로 보았던 부활의 예수를 증거했는데 사람들은 말을 만들었습니다.

이 사람이 백성들을 미혹하게 한다고 미혹이란 말은 뭐예요?

백성들을 나쁜 길로 끌어가는 거잖아요. 그들을 위해서 하는 일인데 감옥에 들어가 있으면서 바울의 입장은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또 바울은 걱정이 됩니다. 내가 지금 복음을 전했는데 이 일 때문에 복음이 방해를 받지는 않을까 복음 사역이 여기서 중단되면 어떨까 마음속에 걱정이 됩니다.

그런데요. 그 빌립보 감옥 속에서 바울은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바울과 실라가 한밤중에 찬송하고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옥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바울의 손과 발에 있던 그 수갑이 끊어졌습니다. 이제는 도망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자리에 가만히 기다렸습니다. 깜짝 놀란 간수가 와서 보니 죄수였던 바울과 실라가 그 자리에 있습니다.

깜짝 놀라며 그들에게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나와 내 집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바울이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리고 그곳에서 자기의 가족들과 친척들을 다 데리고 와서 바울 앞에서 말씀을 듣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빌립보 교회잖아요. 여러분 이 빌립보 교회는 사도바울이 전도할 때 돈을 보내줍니다.

그리고 기도 제목을 함께 나누며 바울의 기도의 동력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의 이 경험을 그리고 그때의 그 아픔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빌립보서 1장 12절에서 14절까지 말씀 시작,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의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에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당장에는 실패한 줄 알았는데, 당장에는 더 이상 이 복음이 전파되지 못할 것 같다 걱정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하나님은 역전시켜 주셨더라는 거죠.

그 옥에서도 복음을 전하게 했고, 자신이 매였던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회가 되었더라는 거죠.

이 빌립보 감옥에서의 경험을 통해서 바울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실패가 없다는 것을,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실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겁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권면하잖아요. 하나님의 부르심과 하나님의 은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

실패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깨달은 거예요.


복음 사역, 복음을 위해 헌신했던 이 일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고 반드시 그 복음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바울이 확실히 깨닫게 된 거죠.

우리 시대의 선지자라고 하는 별명을 가진 토저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참 많은 우리 신앙 서적을 썼는데 그 토즈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우연이나 실패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단지 이미 약속된 길을 걸을 뿐이다.

돌발적인 사고가 일어나거나 불행히 그 길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불행이라는 것도 사실은 겉보기에 불행으로 보일 뿐, 실상은 불행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의 비밀스러운 참 뜻을 읽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불행이라 여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 특별히 우리가 이 땅에서 복음을 위해 하는 모든 삶, 그 사역들은 지금 당장은 실패한 것 같아도 결코 실패가 아니라는 겁니다.

바울이 깨달은 이 소중한 것.


자신이 복음을 위해 살았던 복음을 위해 땀 흘리고 복음 위해 눈물을 흘렸던 그 삶은 실패가 아니라 여전히 남아 있더라는 겁니다.

자신이 전했던 복음 때문에 이방 사람들이 그 복음을 듣고 구원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겠습니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복음을 위한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복음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복음을 뿌릴 뿐이지만, 하나님께서 그 복음 위에 물을 주고 햇빛을 주고 자라게 하고, 꽃을 피우고 열매 맺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마지막 지점에 섰을 때 마지막 남을 수 있는 것.

여러분이 복음을 위해 헌신하고 복음을 위해 수고했던 것만 남는다는 이 소중한 깨달음이 오늘 여러분에게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돈 모았던 거 그게 남는 거 아니잖아요.


오직 하나 하나님 앞에 기억될 것은 우리가 복음을 위해 내가 전도했던 그것만 남는다는 이 사실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새겨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신의 죽음 앞에서 바울이 또 하나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주님이 주님이 자신 곁에 서 있더라는 겁니다. 주님이 자신 곁에 서서 그 주님께서 자신을 천국으로 인도해 주신다는 그 믿음이 바울 속에 있었습니다.

여러분 바울은요 복음을 전하는 사역 속에 참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바울 주위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죽음 앞에 섰을 때 바울 곁에 남은 사람이 없습니다.

다 떠났다라고 바울은 그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함께할 것 같았던 그 많은 사람들. 바울은 오직 자신을 위해 살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았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그리고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였을 때 그를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기 위해서 헌신했습니다.

눈물 흘렸습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지점에 보니 바울 곁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사람은 믿을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 중에 얼마나 많이 사람이 목숨 거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는 저 사람과 끝까지 갈 거라고 사랑하고 사랑을 주고 그 사람과의 관계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물질들을 투자합니까?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사람은 신뢰의 대상,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다만 사람은 사랑할 대상입니다. 내가 그를 사랑해 줄 대상이지 신뢰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 외로운 자리에서 바울은 두 사람을 떠올렸습니다.

한 사람은 디모데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자신을 떠나고 디모데가 자신의 뒤를 이어 이제 교회를 목회해야 되잖아요.

목회하면서 복음을 위해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수많은 것들을 디모데에게 전하고 싶었던 거죠.

여러분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는 바로 그렇게 된 내용들입니다.

또 한 사람 마가를 떠올립니다.


왜냐 사도 바울이 이제 심판대 앞에 설 때 부끄럽지 않도록 서기 위해서였습니다.

지난날 바울은 마가와 안 좋은 기억이 있죠? 1차 선교 여행 때 바나바와 함께 가는데 바나바의 조카였던 마가와 함께 선교 여행을 떠납니다.

그런데 선교 여행 도중에 마가가 병에 걸렸습니다.

바울은 그를 위해서 기도하고 밤잠을 자지 않고 마가를 위해서 정성을 다해서 기도하고 간호했습니다.

다행히 마가가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가는 선교 도중에 고향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

바울에게는 너무너무 서운했고 섭섭했고 아픔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2차 다시 선교 여행을 떠나려고 할 때 바나바가 마가를 데려가자는 겁니다.

근데 바울은 허락이 안 되었습니다. 서운함이 아직도 남아 있고 선교 사역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고, 그리고 지난 날이 기억날 것 같아서 바나바와 함께 대판 싸우면서까지 마가와의 동행을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따로 간 거예요.


그런데 이제 바울이 이 땅의 삶이 끝나고 하나님 앞에 심판대 앞에 설 때를 생각해 보니 그런 불편한 관계 가지고는 미워했던 그 마음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설 수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디모데에게 마가를 데려와라. 바울이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민 거죠.

이것이 바로 바울의 믿음이었던 겁니다. 여러분 바울의 목회 사역에는 고마운 사람도 있었잖아요.

로마서 16장에 보면 베베라는 이름을 알립니다.

그는 나의 보호자였다. 또 브리스가와 아굴라. 그들은 나를 위해 자신들의 생명까지 내어주었다.

바울이 그렇게 선교 사역에 그렇게 도와주었던 고마운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로 바울을 아프게 했던 바울의 마음을 찔렀던 그런 나쁜 사람들도 있잖아요.

디모데후서 2장 17절에 보면 후메네오와 빌레도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 나감과 같은데, 그중에 후메네오와 빌레도가 있으니 여러분 목회하면서 참 고통스러운 게 말이에요.


말 없는 말 지어내고 자기 마음대로 말 만들어내고 정말 고통스러운 거 말 때문에 상처 제가 이 바울을 보면서 위로를 받는다니까요.

그 엄청난 바울도 그런 아픔이 있었잖아요. 호메네오와 밀레도 바울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던 그런 사람들.

그런데 놀랍게도 바울은 그들을 다 용서하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내가 처음 변명할 때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한다.

이제 마지막 순간 주님 앞에 서야 할 때가 다가온 걸 알면서 바울은 사람들과의 매였던 그리고 묶였던 좋지 않았던 감정들을 다 스스로 풀었습니다.

그리고 용서했습니다. 그 허물을 그들에게 돌리지 않겠다.

그럴 수 있었던 게 뭘까요? 그도 사람인데 바울이 마지막에 그 모든 사람들을 용납할 수 있었던 것 그것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울 곁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7절 18절에 보면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시니 그리고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할 것이라고 하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저 천국을 바라보면 땅의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바울은 다 용서할 수 있었던 거죠.

그 외로운 자리 그토록 아끼고 사랑했건만 다 떠났던 그 빈자리 사람은 떠났어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울 곁에 서 계셨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생애의 마지막, 그에게 남아 있던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대응 가족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 깨달음이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애의 마지막 순간, 여러분 곁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여러분 곁에 함께하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만 계시면 우리의 구원을 완성시켜주실 그 주님만 계신다면 우리는 어떤 일도 다 내려놓을 수 있고 용서할 수 있고 그 길을 달려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자신 곁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비록 자신 곁에 아무도 없는 외로운 자리였지만 바울은 끝까지 복음을 위해 살았습니다.

사도행전 28장 31절 32절 그 마지막에 바울은 온 이틀을 로마에 있으면서 새 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담대히 증거했더라.

죽기까지 그는 복음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것만이 영원히 영원히 남는 것이죠.

사랑하는 대응 가족 여러분 여러분의 남은 삶이 얼마일지는 모르지만 여러분들도 바울의 뒤를 따라 남은 인생, 복음을 위해 헌신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만이 여러분의 인생에 남는 거고, 심판대 앞에 설 때 하나님 앞에 칭찬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기억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이 복음 전하는 이 이 길 끝까지 달려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바울이 깨달았던 이 소중한 깨달음, 인생의 마지막에 섰을 때 남는 것은 복음을 위한 수고였고,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곁에 있다는 것을 우리로 깨닫고 사람들 세상의 것에 투자하지 말게 하시고 오직 주어진 날들, 내 삶에 남아 있는 시간들 전도하며 복음 전하는 일에 다 사용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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