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교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 2:22)

[2025.04.20-부활주일예배]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들(요한복음 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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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흥교회
댓글 0건 조회 127회 작성일 25-04-23 14:25

본문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시다(막 16:9-11)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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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주제

-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와 가치

- 부활 신앙이 초대교회에 미친 영향



다음 할 일

- 초대교회의 부활 신앙 연구

-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사도 바울의 고백 묵상

- 낙심했던 제자들의 변화에 대한 연구

-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인들의 이야기 수집

- 예수님의 부활을 찬양하는 노래 만들기



단락별 요약

예수님의 부활

-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임

- 예수님의 부활이 얼마나 소중한지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7절에서 20절까지 고백함

-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의 기쁨이고 자랑이고 소망임


예수님의 부활

- 예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건임

- 예수님의 부활은 눈으로 보았던 증인들이 있음

-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가신 이유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하셨던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기 위해서였음

-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첫날 새벽 무덤에 왔던 여인들, 그들이 천사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 그가 다시 살아나셨다.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냥 하늘로 올라가셨다면 예수님의 부활의 사실은 전혀 소문나지 않았을 것임


예수님의 부활

- 예수님을 사랑했던 그도 부활 소식은 듣지 못하고 가짜 뉴스에 사랑했던 예수님의 시체를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 때문에 슬픔 속에 사로잡혀 있었음

- 슬픔의 현장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마리아의 이름을 불러줄 때 마리아가 슬픔에서 깨어나고 기쁨을 누리게 됨

-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을 향해 달려감

-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평강을 주심


예수님의 평강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제자들이 두려움과 걱정에서 벗어나서 세상의 삶의 한가운데로 가서 부활의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을 나누어 주라고 찾아가신 것임

- 부활하신 예수님이 낙심했던 두 제자에게 찾아가셔서 말씀을 풀어주실 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고, 그들은 다시 사명의 자리에 설 수 있도록 변화되었음


초대교회 속의 부활 신앙

- 초대교회 속에는 부활 신앙이 있었음

- 부활의 주님을 다시 모시게 되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기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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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죽음과 싸움에서 승리하시고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의 아침,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이 천사들로부터 놀라운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찌하여 살아있는 자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여러분 이 놀라운 부활의 기초 위에 우리 기독교가 서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기독교는 다른 종교가 절대로 따라 할 수 없는, 흉내 낼 수 없는 기독교만의 자랑.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신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없었다면, 예수님이 공생애 동안 하셨던 그 모든 것들은 다른 성인, 군자들의 가르침과 철학과 다를 바가 없었겠죠.

예수님의 죽음으로 만약에 부활하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이 땅에 교회가 설 리 없고, 대흥교회 역시 이 땅에 세워지지 않았을 거고, 예수의 부활이 없었다면 저와 여러분들과의 우리의 이 행복한 만남도 이 땅에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가치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7절에서 20절까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같이 한번 고백할까요? 시작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예수의 부활이 얼마나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가 하는 이 모든 일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신 거죠.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성탄절도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가 지난 주간 한 주 동안 열심히 묵상했던 고난 주간의 십자가의 능력도 이 땅에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여전히 죽음의 문제 때문에 슬퍼하며 절망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믿는 믿음이 진짜고, 저와 여러분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선물로 주어진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기쁨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자랑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소망인 줄로 믿습니다. 부활의 주님 그것은 우리의 능력입니다.

오늘 부활 주일 예배에 참여하신 여러분 모두가 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 여러분이 이 부활의 기쁨과 부활의 소망과 부활의 능력을 다시 한 번 여러분 안에 가득 채우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바로 하늘로 가시지 않고 40일 동안 이 땅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그 사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사도행전 1장 3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작,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사 40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0일 동안 부활하신 다음 살아나신 일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부활의 주님을 만났잖아요. 고린도전서 15장 4절에서 8절까지 바울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시작,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제자에게 와 그 후에 500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 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예수의 부활은 눈으로 보았던 증인들이 있다는 거죠.

예수의 부활 사건은 그러므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땅에 계시면서 하셨던 일들은 예수님의 제자들,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하며 따랐던 여인들을 만나주신 겁니다.

예수님은 원래 기다린 분이 아니라 찾아가시는 분이었잖아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 영광 버리고 이 땅에 찾아오셨던 예수님 공생 기간 제자들을 부르실 때도 주님이 직접 바닷가를 다니면서 세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을 찾아가셔서 제자로 불러주셨습니다.

이것은 그들과 예수님 사이의 모든 일은 언제나 주님이 먼저 하셨다는 겁니다.

여러분과 우리 사이, 그리고 여러분과 주님 사이에 여러분이 누리는 것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먼저 한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먼저 여러분에게 다가오셔서 여러분의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신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사랑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를 만나주셨습니다.

우리의 빈 마음을 아시고 주님께서 채워주셨습니다.

주님이 먼저 사랑하셨고, 주님이 먼저 손 내밀어 주셨습니다.


주님이 먼저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은혜는 우리에게 다가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우리가 누리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 이제는 이 세상의 모든 질서로부터 초월하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주님이 찾아간 사람들이 누구냐고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허락했던 죄가 없다고 자기 입으로 말하면서 무리들 앞에서 손을 씻었던 비겁했던 빌라도에게 주님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못 박았던 유대교 종교 지도자들, 그 군인들에게 찾아가서 그 억울함을 호소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가신 이유가 있죠.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하셨던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인자가 많은 사람들에게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고 3일 만에 부활할 것이다.

예수님이 여러 차례 말씀하셨잖아요. 그 말씀대로 예수님은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던 첫날 새벽 무덤에 왔던 여인들, 그들이 천사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 그가 다시 살아나셨다.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냥 하늘로 올라가셨다면 예수님의 부활의 사실은 전혀 소문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직접 찾아가셔서 부활하신 몸을 보여주셨던 거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직접 찾아가신 또 하나의 이유는 낙심하고 실망하고 절망 속에 있던 그 제자들에게 믿음을 회복시켜 주시고, 사명을 주시기 위해 식었던 그들의 믿음, 열정, 주님을 향한 사랑을 뜨겁게 만들어 주기 위하여 예수님은 제자들을 찾아갔던 거죠.

성경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여러 장소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것을 보여주었고, 다양한 사람들의 믿음을 다시 뜨겁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될 때 우리도 그런 은혜와 그런 능력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만나주었던 사람 막달라 마리아 그의 노래를 변화시켜 주었습니다.


이른 새벽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를 발라주기 위해서 향유를 가지고 무덤을 방문했던 여인들.

돌문이 옆으로 굴려져 있고 무덤 속에는 사랑했던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 장면을 본 순간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마리아가 울었을까요?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전에 이미 예수님은 3일 만에 살아난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무덤이 비어 있단 말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라고 받아들여야 되는데 그럴 수가 없었던 거죠.

그 대신 마리아가 믿었던 것은 가짜 뉴스였죠.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되기 전에 이미 흘렀던 이야기들.

갈릴리에서 추종자들이 와서 그 예수의 시체를 어딘가 훔쳐갈 것이다.

이게 그 당시에 흘렀던 가짜 뉴스였던 거죠. 그런데 보십시오.

예수님은 이미 부활했는데 그 현장의 눈으로 보았던 막달라 마리아.


그렇게 예수님을 사랑했던 그도 부활 소식은 듣지 못하고 가짜 뉴스에 그는 사랑했던 예수님의 시체를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 때문에, 그것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죄송함 때문에 슬픔 속에 사로잡혀 있었던 거죠.

그런데 그 슬픔의 현장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마리아야 그 이름을 불러주었습니다.

주님께서 마리아의 이름을 불러줄 때 감당할 수 없는 슬픔 속에 있던 마리아가 슬픔에서 깨어나고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을 향해 달려갑니다.

마태복음 28장에 보면 마태는 그 달려가는 마리아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다름질할세.

그가 제자들에게 가서 했던 말이 뭡니까? 내가 주를 만났다.

내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내가 다시 만났다. 큰 슬픔 속에 있던 그 막 달라 말이야.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이제는 슬픔 따위는 다 떨쳐버리고, 주체할 수 없는 감당할 수 없는 기쁜 마음이 그 속에 가득 있어서 지체할 수 없어 달려 달려 달려가서 만난 제자들에게 내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라고 증언했죠.

슬픔이 변하여 이제는 새 노래가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의 노래를 바꾸어 주신 거죠.

사랑하는 교부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 인생들의 노래를 변화시켜 주시는 분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14장 3절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송량함을 받은 14만 4천 밖에는 능이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요한계시록 14장에는 14만 4천 명이 부를 노래 이렇게 제목이 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계시록은 비밀이 많기 때문에 우리는 그 숫자 그대로를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왜 14만 4천 명이냐 그들은 이 땅에 살면서 부활의 예수를 만났던, 그래서 죄의 문제로부터 송량 받은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 속량 받은 14만 4천 명은 천국에서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다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만날 때, 부활하신 주님을 내 속에 모실 때 우리도 그렇게 부활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거죠.

여러분 유대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그들이 부르기 시작했던 노래가 있습니다.

아니마밈이라고 하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의 의미는 나는 믿는다 그런 뜻입니다.


포로수용소에서 동료들이 죽어갈 때 내 일에 보장되지 않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믿음을 가지고 있던 어떤 사람이 그 포로수용소에서 작사 작곡했던 노래가 바로 아니마밈이라는 노래입니다.

여러분 그 가사가 이런 겁니다. 나는 믿는다. 나의 메시아가 나를 돕기 위해 반드시 나를 찾아오리라는 사실을.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 서두른다. 사람들은 너무 서둘러 믿음을 포기한다.

그러나 메시아는 반드시 오신다. 다만 조금 늦을 뿐이다.

메시아는 반드시 오신다. 다만 조금 늦을 뿐이다.

여러분의 심정도 그럴 것 같습니다.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질병 고통 속에서 답답한 현실 때문에 주님이 빨리 와주시기를 바라지만, 늦어지는 것 때문에 실망하고 낙심한 분 계십니까?

다시 부활의 주를 모시기를 바랍니다. 찾아오실 것입니다.

다만 늦을 뿐입니다. 그때까지 부활 신앙으로 이겨내시면 주님께서 여러분의 노래를 이제는 슬픔이 아니라 기쁨의 노래로 변화시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평강을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에서 20절 말씀입니다.

함께 고백할까요? 시작.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제자들이 누구입니까?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게 들은 바, 내가 너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 예수님의 미션을 수행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 남겨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바깥을 나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한심하고 얼마나 답답한 사람들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찾아오셨습니다.


분명히 그들은 두려워서 안에서 문을 잠그고 있는데, 예수님은 그 한가운데 서서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주는 평강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르다. 평안을 주셨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못하던, 꼼짝도 하지 못했던 그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나서 어떻게 변화됩니까?

그들 속에 기쁨이 가득 찼습니다. 제자들이 기뻐하더라.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이제는 기뻐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또 한 말씀을 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예수님께서 두려움 속에 있는 제자들에게 찾아가신 이유는 그들만 기쁘게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두려움과 걱정에서 벗어나서 이제는 제자들이 세상의 삶의 한가운데로 가서 세상에 여전히 염려와 걱정과 두려움 속에 살아가는 그들에게 부활의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을 나누어 주라고 예수님께서 찾아가신 겁니다.

오늘 부활 주일에 우리 여섯 분의 새 가족들이 오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이 자리에 오신 것은 여러분에게 줄기차게 다가가서 여러분을 설득했던 우리 성도들이 있었기 때문인 거죠.

우리는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안에는 이런 소망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이 기쁨을 여러분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서 우리 포인트 전도대 대원들이 여러분을 설득했던 거죠.

오늘 새롭게 등록하신 여러분에게도 우리 안에 있는 이 기쁨, 돈으로 살 수 없는 기쁨,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다는 것, 여러분도 깨닫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부활 주일 자리에 우리를 부르신 아버지의 뜻이 여기에 있는 거죠.

나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빈 마음, 걱정하며 살았던 우리의 마음, 부활의 예수님을 모시고 이제는 담대하게 세상 한가운데서 부활의 노래를 부르기를 원하시는 이 하나님의 뜻을 꼭 기억하며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부활하신 예수님이 낙심했던 두 제자에게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고 사명의 자리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누가복음 24장에 보면 예루살렘에서 고향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자신의 모든 것들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이 가는 곳에 함께 따라다녔습니다. 가는 곳마다 전파하시는 능력의 말씀, 가는 곳마다 세상이 고치지 못했던 병을 고치는 예수님을 보면서 환호하고 따라오는 그 많은 무리들을 보면서 행복한 꿈을 꿨죠.

우리가 이 예수님과 함께 산다면 내 인생은 분명 화려하고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때부터 예수님은 예루살렘이 가까이 오면서 계속해서 죽는다는 이야기만 하는 겁니다.

인자가 많은 사람들에게 팔려서 죽게 될 것이다. 그 뒷말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죽는다는 이야기만 들렸던 거죠.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믿었던 예수님은 무능한 가장 약한 자의 모습으로 잡히시고 빌라도 앞에 한 말씀도 못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마지막 드라마틱하게 그 십자가에서 뛰어내릴 줄로 알았건만, 예수님은 힘없이 아버지께 자기의 생명을 맡기며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의 소식을 들었을 때 이 두 사람도 이제는 모든 것들이 끝이 났습니다.

더 이상 예루살렘에 머물 이유를 잃어버렸던 거죠.

그리고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유대교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추종했던 무리들을 다 잡아서 죽이겠다는 거죠.

그 두려움에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고향 땅 안전한 곳으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이 사람들을 막아서 설득하지 않으면 그들의 인생은 초라한 인생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그 자리에 부활의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실망하며 낙심하고 내려가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성경에 있는 여러 가지의 성경을 풀어서 그들에게 말씀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죠.


낙심하고 실망하여 힘없이 내려가던 두 사람이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서로에게 말합니다. 그가 나에게 우리에게 말씀을 풀어줄 때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나는 그 말씀을 들었을 때 내 마음이 뜨거워졌는데, 너는 어떠하느냐 너도 그랬느냐 나도 그랬다.

그분이 내게 말씀을 풀어줄 때 내 마음이 뜨거워지더라.

여러분 우리의 마음이 답답하십니까? 그럴 때 여러분 말씀을 찾으십시오.

성경을 찾으십시오. 사람들에게 다니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가면 말씀 속에 답이 있습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의 답답한 심정을 시원하게, 냉랭한 마음을 뜨겁게 만들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 부활의 주님 때문에 이 두 사람은 다시 발길을 돌려 예루살렘에 돌아갔고, 그곳에 있던 제자들과 합류하여 초대 교회 그 놀라운 일들을 일으키는 주역들로 살아가게 되었던 거죠.

부활의 주님은 식었던 마음을 뜨겁게 그리고 사명의 자리를 떠나가던 그들에게 다시 사명의 자리에 설 수 있도록 부활의 주님께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여러분 초대교회 얼마나 큰 박해들이 있었습니까?

그러나 그들 속에는 이 부활 신앙이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그들은 생생하게 담고 살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위대한 일들을 할 수 있었고, 위대한 교회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대형 가족 여러분 오늘 여러분 속에 잊어버렸던 부활의 주님이 다시금 여러분 마음속에 새롭게 모셔지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입술에 슬픔이 변하여 새 노래가 울려 퍼지게 되고, 불안이 떠나 참된 기쁨으로 세상을 향해 달려가게 되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던 그 사명을 위해 식어진 우리의 열정이 다시 뜨거워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 은혜가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났던 변화를 경험했던 그 많은 사람들처럼, 오늘 사랑하는 대형 교회 모든 성도들에게도 그 부활의 기쁨이 부활의 주님을 다시 모으시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이제는 새 노래를 부르게 하시고 참된 기쁨으로 세상 한가운데 서서 이 기쁨을 전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대형 교회 모든 성도들, 주님과의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주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귀한 사명의 자리에 다시 서게 하여 주옵소서 온 인류의 그리고 이 땅에 다시 한 번 부활의 노래가 울려 퍼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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